이적시장이 열리면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단어가 ‘몸값’이다. 그런데 몸값이라는 말은 어쩐지 어감이 좋지 않다. 사전적 의미로도 ‘팔려온 몸의 값’ ‘ 사람의 몸을 담보로 받는 돈’ ‘사람의 가치를 돈에 빗대어 낮잡아 이르는 말’을 지칭하니 역시 꺼림칙하긴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굳이 이 표현을 버리지 못할까? 그건 이적료라는 무미건조한 표현에 비해 훨씬 직설적으로 피부에 와 닿는 용어이기 때문일 것이다.
고전적 의미에서 몸값은 해적들이 ‘인질을 석방하는 대가로 받는 돈(ransom)’을 뜻했다. 그런데 그 역사를 살펴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요즘에는 해적이 요구하는 몸값을 깎는 게 당연시 되고 있지만 먼 옛날에는 몸값이 곧 자신의 가치를 상징하는 도구로 여겨지기도 했다. 기원전 1세기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소아시아(터키) 여행을 떠났다가 에게해에서 해적에게 납치돼 38일간 섬에 갇혔다가 풀려난 적이 있다. 그런데 해적이 인질의 몸값으로 처음 요구한 돈이 워낙 적어 카이사르가 벌컥 화를 냈다는 일화가 있다. 결국 해적이 그를 석방하는 대가로 받은 돈은 50탈렌트(talents). 당시 1탈렌트는 순은 26kg를 지칭했으니 요즘 시세로는 미화 60만달러(약 6억6000만원)를 지불한 셈이다. 물론 나중에 그를 가뒀던 해적들은 모두 잡혀서 십자가형에 처해지지만.
중세 유럽 기사들은 전투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비싼 몸값을 일부러 과시하기도 했다. 몸값이 비싸면 생포해서 돈 받고 풀어주던 풍습 때문이었다. 특히 귀족 출신이나 왕족 출신 기사들은 전투 때면 자신의 가문을 상징하는 문장이 적들의 눈에 잘 띄도록 내세우곤 했는데 모두 이런 연유에서였다. 12세기 십자군 전쟁 때도 왕들이 엄청난 몸값을 지불하고 사례가 종종 등장한다.
이러한 역사 때문인지 유럽축구에선 아직도 선수 몸값을 나타내는 용어로 이적료(transfer fee)보다 보상금(compensation)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특히 선수계약서에 들어가는 바이아웃(일정한 금액을 지불하면 이적할 수 있는 권리)에는 예외 없이 Compensation이라는 표현이 들어간다.
이적료(몸값)는 선수의 가치를 나타내는 기준이지만 선수와는 무관한 돈이다. 구단과 구단끼리 주고받는 돈이다. 하지만 선수로선 자신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대외적으로 인정받는 것이기에 아주 중요하다. 마치 중세의 기사가 자신의 몸값에 민감했듯이. 동시에 선수들의 몸값은 선수 개인 뿐 아니라 한나라의 축구수준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주)지쎈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