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는 태극마크에도 유독 애착을 보였다.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는 김인식 대표팀 감독(왼쪽)의 부름을 받고 마무리투수를 맡아 4강 신화에 일조했다. 스포츠동아DB
박찬호(39)는 메이저리그 동양인 최다승(124승)을 올린 투수다. 6월에는 2016년 명예의 전당 헌액 후보(16명)로 뽑혔다. 한국에서 그가 갖는 상징적 의미는 더 크다. 1990년대 후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로 지친 서민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국민영웅’이었다.
그런 박찬호에게도 아쉬움 하나가 남는다. 1994년 LA 다저스에서 데뷔한 뒤 단 한번도 우승반지를 끼지 못했다. 풀타임 선발로 도약한 1997년부터 5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따내며 메이저리그에서도 알아주는 특급 선발로 자리 잡았지만, 팀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박찬호가 처음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은 것은 2005년 시즌 도중 이적해간 샌디에이고에서다. 샌디에이고는 2006년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에 진출했고, 박찬호도 1차전에서 2이닝 무실점을 기록했지만 팀이 세인트루이스의 벽을 넘지 못했다. 2009년 필라델피아에선 생애 첫 월드시리즈를 경험했지만 뉴욕 양키스에 우승컵을 넘겨줬다. 이듬해 우승반지 하나만 보고 양키스로 이적했지만 시즌 중 웨이버 공시돼 피츠버그로 옮겼다.
박찬호는 2011년 일본 오릭스 유니폼을 입으면서 “월드시리즈 우승반지가 없는 게 가장 아쉽다”며 17년간의 메이저리그 생활을 되돌아본 바 있다. 한국에서도 하위팀 한화에 몸담게 되면서 우승의 기쁨은 누리지 못한 채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홍재현 기자 hong9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hong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