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 에세이] 시즌 중 감독 경질은 약일까? 독일까?

입력 2018-03-14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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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겸, 남기일, 박경훈 감독(왼쪽부터)은 지난해 시즌을 치르며 줄줄이 사퇴했다. 해마다 K리그를 강타해온 감독 교체의 소용돌이가 올해는 과연 잠잠해질까. 스포츠동아DB

최윤겸, 남기일, 박경훈 감독(왼쪽부터)은 지난해 시즌을 치르며 줄줄이 사퇴했다. 해마다 K리그를 강타해온 감독 교체의 소용돌이가 올해는 과연 잠잠해질까. 스포츠동아DB

스포츠기자를 하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순간 중 하나는 시즌 중 감독이 경질될 때다. 그 감독과 친했다면 더욱 애잔하다. 멀쩡했던 신분이 하루아침에 백수로 전락한 감독을 어떤 말로 위로할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감독을 두고 ‘파리 목숨’이라는 끔찍한 용어를 갖다 붙인다.

구단은 성적이 맘에 안 들면 언제든지 갈아 치운다. 대개는 자진사퇴라고 발표한지만 실상은 경질이다. 그 시기는 시즌 초반이든, 중반이든, 종반이든 가리지 않는다. 물론 칼자루를 쥔 구단도 마음이 편할 리는 없다. 그들은 성적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프로의 속성을 따를 뿐이라고 항변한다.

지난 시즌 K리그 벤치는 요동쳤다. K리그1에서는 대구 손현준 감독을 시작으로 최윤겸(강원), 남기일, 김학범(이상 광주) 노상래(전남) 감독 등이 물러났다. 모두들 성적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지도자들이다. K리그2에서는 더 심했다. 10개 구단 중 7개팀이나 교체됐다. 정말 하루가 멀다 하고 감독 사퇴 소식이 전해질 정도로 칼바람이 휘몰아친 한해였다. 승격을 목표로 전력을 다했던 부산 조진호 감독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 충격을 주기도 했다.

광주FC를 맡을 당시 김학범 감독.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광주FC를 맡을 당시 김학범 감독.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이는 비단 K리그만의 상황은 아니다. 세계에서 리그가 가장 활성화됐다는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해 잉글랜드프로축구감독협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자국 리그 감독의 평균 재임 기간은 1.16년에 불과했다. 성적이 기대에 못 미치면 가차 없었다는 얘기다. 올 시즌엔 아르센 벵거 감독의 경질설이 톱뉴스에 올랐다. 1996년 부임 이래 23년째 아스널을 이끌고 있는 EPL 최장수 감독도 경질이라는 벼랑 끝 운명 앞에 선 것이다.

그렇다면 시즌 중 감독을 자르는 게 능사일까. 새로운 감독이 오면 단박에 구단이 원하는 성적이 나올까.

지난 세월을 더듬어보면 꼭 그렇지는 않았다. 잠깐의 분위기는 바꿀 수 있을지 몰라도 구단이 원하는 성적과는 크게 상관이 없었다는 게 내가 봐온 경험의 결론이다.

감독 교체와 관련된 학계의 논문이 몇 편 나와 있는데, 그 논문들도 시즌 중 감독을 교체한다고 해서 성적이 오른다는 보장은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

‘한국프로축구팀의 감독 교체가 팀 경기성과에 미치는 영향’(김필수·김대권, 2015)은 감독 교체가 팀 경기성과에 미치는 효과를 경영학의 조직학습이론을 적용해 규명한 논문이다. 1983년부터 2013년까지 30년 동안의 K리그 19개 팀과 96명의 감독을 분석했다.

연구의 결론은 첫째, 감독 교체는 팀 경기성과와 부(-)의 관계를 가진다. 둘째, 시즌기간(on-season)의 교체는 팀 경기성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시즌 중 감독을 교체하는 경우 악순환이론 관점이 적용된다고 했다. 셋째, 비시즌기간(off-season)의 교체는 팀 경기성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시즌이 끝난 뒤에 지도자를 교체하는 경우 상식이론 관점이 적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넷째, 시즌기간과 비시즌기간의 교체간의 팀 경기성과의 차이를 비교한 결과, 비시즌기간의 교체가 시즌기간의 교체에 비해 유의한 팀 경기성과를 보였다.

쉽게 말해 감독 교체가 곧바로 팀 성적을 끌어올린다고 할 수 없으며, 감독을 교체하더라도 시즌 중이 아니라 시즌이 끝난 후에 하는 게 좋다는 의미다.

라니에리 감독은 레스터 시티를 2015~2016 프리미어리그 우승으로 이끌었지만 다음 시즌 부진하자 시즌 도중 경질됐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라니에리 감독은 레스터 시티를 2015~2016 프리미어리그 우승으로 이끌었지만 다음 시즌 부진하자 시즌 도중 경질됐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물론 이 통계치가 100% 맞는 건 아니다. 시대별로, 구단별로 상황이 다르고, 지도자의 능력 또한 많은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다만 시즌 중 감독 교체가 유익하지 않다는 통계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프로스포츠 감독 교체 시기와 조직성과에 관한 연구 : 조직학습 관점에서의 통합적 접근’(박종훈·성연달·이동현, 2012)은 감독에게 부여되는 학습시간의 차이가 조직학습프로세스 및 팀 성과개선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준다.

국내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부터 2010년까지 29년간 프로야구팀을 대상으로 한 이 연구의 결론은 첫째, 악순환이론 관점에서 제시하는 시즌 중 감독 교체와 팀 성과의 부(-)의 관계는 지지되며, 둘째, 희생양이론 관점에서 제시하는 시즌 간 감독 교체와 팀 성과 간 관계는 나타나지 않았으며, 마지막으로 상식이론 관점에서 제시하는 직전 시즌 감독 교체와 팀 성과의 정(+)의 관계는 지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팀 성과의 평균 차이를 분석한 결과, 시즌 간 교체의 팀 성과가 시즌 중 교체보다 유의하게 높게 나타났다. 바람직한 감독의 교체시기를 보여주기 위한 이 연구의 결론 또한 시즌 중 교체가 약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3월 1일 개막한 2018시즌 K리그는 2라운드를 치렀다. 연승 팀도, 연패 팀도 있다. 벌써부터 팬들에게 야유를 받는 감독도 있다. 하지만 주눅 들지 말았으면 한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 시점에 감독의 생사여탈권을 쥔 구단에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 지도자의 능력이 턱없이 모자라거나, 사생활 문제로 도덕적인 비난을 받는 지도자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시즌 중간에 성적이 잠시 떨어졌다고 무자비하게 내치지 않았으면 한다. 감독을 선임할 때 능력을 제대로 관찰하지 못한 구단의 책임도 크다. 가급적이면 계약기간을 지켜주는 풍토를 만들었으면 한다. 아울러 감독들도 한 시즌을 완주할 수 있도록 정신무장을 단단히 하자.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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