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시아 울린 ‘아름다운 밀당’

입력 2013-04-0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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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행 외국인 선수 알레시아(오른쪽)가 V리그 챔프전 4차전에서 GS칼텍스를 꺾고 우승을 확정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구미|김종원 기자 won@donga.com트위터 @beanjjun

기업은행 외국인 선수 알레시아(오른쪽)가 V리그 챔프전 4차전에서 GS칼텍스를 꺾고 우승을 확정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구미|김종원 기자 won@donga.com트위터 @beanjjun

■ 기업은행, V리그 통합우승 그 후…‘이정철 감독-알레시아’ 스토리


지난해 일방적으로 한국 떠난 알레시아
우여곡절 끝 복귀후에도 약속어겨 골치

이 감독 채찍·당근 덕에 독기 품고 변신
강도 높은 훈련도 소화…팀주포 맹활약
3차전 역전패 아픔 씻고 챔프전 MVP


2011∼2012시즌 프로배구 V리그가 끝난 뒤였다. 기업은행의 외국인 선수 알레시아 모녀는 팀이 제공하는 승용차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모녀의 표정은 달랐다. 어머니는 울었다. 자신들을 잘 대해준 팀에 대한 고마움과 한국의 정(情)과 이별해야 한다는 슬픔에 울었다. 딸은 차 속에서 찬바람이 이는 표정으로 있었다. 마음속에는 두 번 다시 한국에는 안 온다는 생각이었다. 시즌 막판에 “유럽의 다른 팀을 알아보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정철 감독은 그런 알레시아에게 마지막 저녁을 대접했다.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어머니도 함께 모셨다. “다른 팀에 가더라도 좋은 플레이하길 바란다”고 덕담도 했다. 그러나 세상일은 아무도 몰랐다. 알레시아는 2012∼2013시즌 한국무대로 돌아왔다. 유럽 진출의 꿈이 이뤄지지 않자 먼저 연락을 했다. 이 감독도 새 외국인 선수에 눈길을 돌렸으나 계약이 이뤄지지 않자 미워도 다시 한 번이라는 심정으로 알레시아를 선택했다.

이정철 감독

이정철 감독


이 감독은 한 가지 조건을 달았다. “석 달 전에 와서 팀훈련에 참가해야 한다”고 했다. 알레시아는 그 말을 따르지 않았다. “일찍 오면 어머니와 함께 제주도 여행도 보내주겠다”고 했지만 시즌 개막 3주 사흘을 남겨놓고 한국에 돌아왔다. 대신 개인훈련을 충분히 하고 왔다고 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이 감독과 알레시아의 밀고 당기기 신경전이 시작됐다. 창단 첫해에는 알레시아가 원하는 것을 많이 들어줬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자존심이 센 우크라이나 선수. 감독의 눈으로 봤을 때 최고의 하드웨어를 가졌지만 소프트웨어가 문제인 선수였다.

감독은 채찍과 당근 정책을 적절히 섞어가며 알레시아를 대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이렇게 훈련 안 했다”며 투덜거리면서도 버티지는 않았다. 감독은 어머니가 볼 때 일부러 딸을 혼내 효과를 높였다. 어머니는 고집이 센 딸이 감독의 말을 따르며 유순해 진 것을 놀라운 눈으로 지켜봤다. 허리에 고질적인 통증을 달고 사는 알레시아를 위한 배려도 해줬다. 구단에 요청해 개인 트레이너가 매일 치료하게 해줬다.

변화가 보였다. 알레시아가 다른 선수들과 함께 셔틀 런을 했다. 지난 시즌에는 힘들다며 하지 않았다. 감독은 가끔 훈련에서 빼주며 배려를 했다. 두 사람의 ‘밀당’은 시즌 내내 이어졌지만 결과는 좋았다. 2년째 한국배구의 밀도 높은 훈련을 통해 알레시아는 이전과 전혀 다른 선수가 돼 있었다.

감독과 알레시아의 밀당은 챔프전에도 계속됐다. 1차전에서는 승리의 주역이지만 서브에이스가 하나 모자라 트리플크라운을 놓쳤다. 감독은 “좀 더 욕심을 가지라”고 했다. 알레시아는 이번 시즌 3차례나 한 점이 모자라 트리플크라운을 놓쳤다. 2차전을 앞두고는 알레시아가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아하는 말을 해줬다. “너는 공주다. 공주다운 모습을 코트에서 보여라. 웃으면서 경기하는 예쁜 모습도 보여주고 우승해서 챔피언시리즈 MVP가 되라.”

알레시아는 1차전 35득점에 이어 2차전 31득점으로 2연승의 주인공이 됐다. 3차전에서도 38점을 몰아쳤지만 4세트 24-21에서 경기를 끝내지 못했다. 듀스까지 몰린 뒤 알레시아의 공격아웃으로 결국 세트를 내줬고 기업은행은 대역전패를 당했다. 알레시아는 경기 뒤 라커룸에서 눈물을 쏟았다. 감독은 그런 알레시아에게 “오늘의 아픔을 잊지 말라”며 달랬다. 그날 이후 이틀간 잠을 자지 못했다는 알레시아는 4차전에서 공주의 모습으로 트로피를 들었다. 공교롭게도 4차전 4세트의 챔프전 포인트는 24-21이었다. 알레시아는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았다. 자신의 스파이크로 시즌 우승을 확정한 알레시아는 마침내 챔프전 MVP가 됐다. 평소 웃지를 않아 얼음공주라 불리던 알레시아가 웃었다. 두 차례 우승을 차지했던 우크라이나에서도 못해본 MVP까지 차지했다. 한국 남자와 우크라이나 여자의 밀당 결과는 해피엔딩이었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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