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드레스로 치장한 스타들의 멋진 자태, 수많은 취재진의 번쩍이는 카메라 플래시 세례, 레드 카펫…. 우리가 각종 보도와 영상을 통해 보는 영화 축제의 도시, 프랑스 칸의 모습은 대개 이렇다. 하지만 해마다 5월이면 영화제로 도시 전체가 들뜨는 칸에 꼭 이런 정경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영화 ‘추격자’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언론과 바이어들의 주목을 받은 제 61회 칸 국제영화제가 25일(현지시간) 막을 내린다. 이번 영화제를 취재하면서 만났던 다양한 모습을 사진으로 정리했다.》
영화 좋아하는 친한 친구에게서 국제전화가 왔습니다. “칸에 가서 좋겠다. 영화도 많이 보고 맛있는 프랑스 음식도 많이 먹고 와.” “그래 고마워”라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바게트에 고추장을 발라 먹으며 느끼한 속을 달래던 아침이었습니다.
상상했던 이상으로 아름다운 영화의 천국 칸. 하지만 한국을 떠난 지 6일이 지나자 얼큰한 김치찌개 생각이 간절하기만 합니다. 해외 여행에서 음식 문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고민이죠. 더구나 관광이 아닌 취재를 위해 찾은 칸. 주문하는 데만 10분이 걸리는 ‘너무나 여유로운 레스토랑’은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기까지 합니다.
칸 기차역 맞은 편에 있는 아시안 패스트 푸드는 그나마 음식이 빨리 나와 자주 찾습니다. 작은 접시에 야채볶음, 볶음밥, 인도네시아 치킨카레 등을 미리 요리해 놓고 전자레인지에 데워주는 식당입니다. 점심만 두 시간씩 먹는 프랑스 사람들은 정말 싫어하는 곳이지요. 문제는 이 식당의 간단한 한 끼가 우리 돈 1만 원 이상으로 정말 비싸다는 것이죠.
하루는 불고기에 상추쌈을 먹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간판은 분명 ‘스시’라고 써있는 일식집이지만 주인이 한국인이어서 칸에서 유일하게 불고기와 된장찌개를 맛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물론 이 곳 역시 제육덮밥 1인분에 20유로, 3만7000원 정도일 정도로 가격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다른 날은 칸에서 제일 잘 나간다는 카페 로마에서 그 유명한 푸아그라의 맛도 봤습니다. 입이 촌스러워 그런지 버터를 떠먹는 듯한 느끼함에 김치 생각이 더욱 간절하더군요.
그런가 하면 영화 시사회장에서 예상치 못했던 간식 서비스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황금종려상의 유력한 후보작 ‘체’(Che)는 오후 6시 30분에 상영을 시작, 쉬는 시간을 포함해 11시 20분에 끝난 정말 긴 영화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 좌석을 놓칠까봐 저녁도 먹지 않고 줄을 서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그런데 오후 9시가 넘어가자 허기가 져 힘들었습니다. 상영한지 2시간 30분 쯤 되자 20분간 휴식시간을 주더군요. 화장실에 가기 위해 잠시 로비로 나오자 영화 제목 ‘CHE’가 찍힌 작은 쇼핑백을 주더군요. 그 속에는 음료, 샌드위치, 초콜릿이 있었습니다. 혁명가 체 게바라를 스크린에서 만난다는 설렘과 허기를 달래주는 인심 좋은 샌드위치까지. 그 어떤 훌륭한 정찬보다 맛있었습니다.
칸(프랑스)=이경호 기자 rus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