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축구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입니까”

입력 2019-04-01 11: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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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자유한국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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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는 대중적이다. 누구나 쉽게 규정을 이해하고 편하게 참여할 수 있는 스포츠다. 아울러 민족적이다. 국가 간 경쟁이 가장 치열한 종목이 바로 축구다. 우리가 종종 전쟁에 비유하는 건 축구의 내셔널리즘 특성 때문이다. 리처드 줄리아노티는 ‘축구의 사회학’(현실문화연구)에서 “축구는 전 세계에 걸쳐 국가 정체성을 만들고 공고히 하는 교육제도나 대중매체 같은 위대한 문화적 제도다”라고 했다. 축구가 갖는 궁극적인 힘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우리의 길거리 응원을 떠올려보자. 축구 덕분에 남녀노소와 도시와 농촌, 진보와 보수 할 것 없이 5천만이 하나로 뭉쳤다. 그건 혁명과도 같은 문화 현상이었다. 우리만이 아니라 지구촌 곳곳에서 이와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 이런 특성 때문에 정치는 틈만 나면 축구를 이용하려고 한다.

지난달 30일 프로축구 K리그 경기장에서 벌어진 선거 유세 논란도 정치가 축구를 이용하려는 잘못된 시도 때문에 생겼다. 경남과 대구의 K리그1(1부 리그) 4라운드가 벌어진 창원축구센터에서 자유한국당 지도부가 찾아 유세를 벌인 게 화근이었다.

경남 구단에 따르면, 입장권 검표 시 경호업체 측에서 정당명, 기호명, 후보자명이 표기된 상의를 착용하고는 입장이 불가하다는 공지를 했지만 일부 유세원들은 입장권 없이 막무가내로 들어가면서 상의를 벗지 않았다고 한다.

경기장에서 선거운동을 못하도록 하는 건 규정에 분명히 나와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정관 제5조(정치적 중립성 및 차별금지)에는 ‘연맹은 행정 및 사업을 수행함에 있어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고 돼 있다. 아울러 경기장 내 선거 운동 관련 지침에는 ‘경기장 내에서 정당명, 기호, 번호 등이 노출된 의상을 착용할 수 없다. 피켓, 현수막, 어깨띠 등의 노출이 불가하며 명함, 광고지 배포도 금지한다’고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이는 우리만 독특하게 갖고 있는 규정도 아니다. 국제축구연맹(FIFA)도 축구장 내 정치 활동은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다. 보편적인 규정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만약 이런 규정이 없었다면 지난 세월 동안 모든 경기장은 선거운동으로 아수라장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었다. 최소한 경기장의 순수성은 지켜졌다. 이번 논란이 국제적인 망신을 당해도 할말이 없는 이유다.

자유한국당은 “규정을 몰랐다”고 한다. 이는 스스로 발등을 찍는 변명이다. 제1 야당이자 거대 정당에 이런 규정을 확인해줄 스포츠 전문가 한명 없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치와 더욱 확실하게 선을 그어야한다. 공식적인 사과를 받는 것은 물론이고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도 촉구해야한다. 축구는 축구일뿐이다. 축구가 더 이상 정치에 휘말려선 안 된다.

최현길 전문기자·체육학 박사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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