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 | KOVO
5일 인천에서 벌어진 흥국생명-도로공사의 5라운드 3세트 도중 도로공사 박정아가 갑자기 쓰러졌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다. 다리에 쥐가 난 것이었다. 박정아는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근육경련은 몸이 지쳤을 때 주로 생긴다. 박정아는 지난해 국가대표 경기를 포함해 60경기 이상을 소화해왔다. 2021VNL(발리볼네이션스리그)과 2020도쿄올림픽을 거쳐 KOVO컵과 V리그 2021~2022시즌 등 쉼 없는 일정이다. 대표팀과 도로공사의 주전 레프트라 그동안 결장이 거의 없었다. KOVO컵에서 1경기를 쉰 것이 유일했다.
6일 화성에서 열린 IBK기업은행과 5라운드 원정경기를 앞두고 김형실 페퍼저축은행 감독은 스타팅 멤버의 변화를 알렸다. “레프트 주전으로 뛰던 이한비와 박경현이 과부하에 걸려 체력적 어려움이 있다. 훈련도 제대로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이한비는 신생팀 페퍼저축은행에 특별지명되기 전 흥국생명에서 백업 요원이었다. 박경현은 실업배구에서 활약했다. 실업배구는 V리그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경기 수가 적다. 토너먼트 대회에 익숙했던 박경현과 웜업존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던 이한비로선 행복하면서도 피곤한 나날의 연속일 것이다.
페퍼저축은행의 등장으로 7개 구단 체제가 된 2021~2022시즌 여자부는 우려대로 경기의 수준이 급격히 떨어졌다. 1위 현대건설과 최하위 페퍼저축은행의 승점 68 차이는 말할 것도 없고, 전반기를 마치기도 전에 ‘봄 배구’에 나가지 못할 팀이 정해져버렸다. 그나마 최근 IBK기업은행이 선전하고 있지만, 대부분 경기의 승패 예측이 가능해지면서 도쿄올림픽 4강 진출에 따른 후광효과마저 사라졌다. 매 경기 박빙에 풀세트가 이어지고, 4~7위의 승점까지 같은 남자부와는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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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팀이 등장하면 일시적으로나마 리그의 생태계가 깨져 경기의 질은 하락한다. 하지만 지금 여자배구의 수준은 프로라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다. 인적 구성이 오래 전 한계상황에 이른 가운데, 몇몇 에이스급 선수들이 리그를 떠나고 팀과 경기 수가 갑자기 늘어나면서 생긴 일이다. 36경기 체제 도입에 앞서 준비가 부족했다.
남자부는 2013~2014시즌부터 7개 구단 체제를 시작했지만, 한 시즌은 종전처럼 30경기를 소화한 뒤 2014~2015시즌부터 36경기로 늘려 적응기를 보냈다. 하지만 여자부에선 30경기에서 36경기로 단숨에 경기 수가 늘어나 선수들의 근무환경이 심각하게 나빠지는 상황을 어느 누구도 고려하지 않았다. 경기 수가 많을수록 좋은 구단과 한국배구연맹(KOVO)이 최소한 현장의 의견을 청취하고 부작용을 줄일 장치를 마련했어야 옳았다.
지금이라도 대책이 필요하다. 각 팀이 쓸 수 있는 선수의 숫자를 늘려주든가, 경기일정을 조정해 지금보다 많은 휴식을 보장해주든가, 연전을 도입해 이동거리를 줄여주든가, 외국인선수 쿼터를 늘려주든가 다양한 방안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했으면 한다. 물론 여기에는 반드시 선수들의 목소리도 담겨야 한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