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용. 스포츠동아DB
스승조롱·품위손상 등 잘못 책임져야
‘인성 VS 기량’ 대표팀 발탁 여부 논쟁
최종엔트리 발표까지 공방 계속될 듯
최근 불거진 축구 대표선수들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논란은 경솔한 말(글) 한마디가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 지를 새삼 일깨워준다. 아직 다 피지도 않은 축구 인생과 맞바꾸는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자기중심적인 사고 속에 사물을 바라보면 이런 상식 밖의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이기적인 사람은 자신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고 눈물을 흘리는 지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면 결코 큰 선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이번 논란은 말해준다.
기성용(스완지시티)의 기량은 누구나 인정한다. 특히 동양선수가 유럽무대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뛰면서 성공하기가 쉽지 않는데, 그는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세계 최고의 무대(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경쟁력을 증명해보였다. 다가오는 시즌이 더 기대되는 선수다. 국가대표팀에서도 중원을 책임지는 붙박이 주전이다.
하지만 합격점을 받은 기량과는 달리 인성은 낙제점이었다.
자신이 대표팀 엔트리에서 빠진 걸 못 마땅해 스승을 조롱한 것이 발단이었다. 월드컵 최종예선 3연전을 앞둔 6월 초 그는 트위터를 통해 “모든 사람을 적으로 만드는 건 리더 자격이 없다”는 말로 최강희 감독을 비꼬았다. 자신을 뽑지 않은 감독은 리더가 아니라는 투였다. 대표팀이나 클럽의 감독은 팀 승리를 위해 엔트리를 구성한다. 부상 중이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빠지는 건 당연하다. 그걸 두고 온 국민이 볼 수 있는 온라인 공간에서 감독을 조롱했다면 대표선수 자격이 없다.
최 감독이 지난 주 인터뷰를 통해 기성용의 트위터가 용기 없는 비겁한 행동이라고 꾸짖자 그는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다 삭제했다. 여러분과 소통하며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고 모든 것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오해를 샀다”고 전한 뒤 숨어버렸다. 다음 날 포털사이트의 한 칼럼리스트가 1년여 전 기성용이 페이스북에 올렸다는 감독을 향한 자극적인 글을 폭로하자 그 때서야 공개 사과를 하고 최 감독에게 용서를 구했다.
공인으로서 물의를 일으켰으면 일이 터졌을 때 당당히 나서 용서를 구했어야했다. 그게 팬들의 사랑으로 지금의 위치에 오른 스타가 가져야할 자세다. 처음 논란이 일었을 때 경솔한 행동이었다며 진심을 담은 사과를 했다면 어땠을까. 최 감독의 인터뷰 이후에 여론이 들끓었을 때도 감정적인 계정 삭제가 아니라 미안한 마음을 담은 글을 올렸다면 이처럼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난 한주를 돌아보면 한 선수가 쓴 몇 문장 때문에 한국축구가 쑥대밭이 된 꼴이었다. 해외파와 대표팀 감독의 갈등이 표면화됐고, 사제지간의 신뢰는 깨졌다. 태극마크의 위상은 땅에 떨어졌다. 팬들의 실망감은 극에 달했다. 온라인상 뜨거운 논쟁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SNS가 현대인의 일상이 된 지는 오래다. 소통을 위한 문명의 이기(利器)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약이 되고, 독이 된다. 결국 이번 논란은 SNS를 그릇되게 사용했기 때문에 일어났다. 상당수 대표선수들이 SNS를 하지만 이처럼 품격 잃은 글을 쓴 경우는 거의 없었다. 공인으로서 모범을 보이지는 못할망정 수준 이하의 문구로 스승을 조롱하고, 대표팀 분위기를 흐려놓았으며, 팬들을 실망시킨 행위는 용서받기 어렵다. 태극전사의 품위를 손상한 것은 징계감이다. 한마디의 사과로 모든 게 해결됐다면 착각이다. 잘못에는 책임이 따라야한다.
걱정스러운 건 이번 논란이 끝난 게 아니라는 점이다. 기성용의 대표팀 발탁을 놓고 월드컵 최종엔트리 발표 때까지 갑론을박은 계속될 것이다. ‘인성은 낙제점이지만 기량이 출중하다면 월드컵 성적을 위해 대표팀에 뽑아야할까’를 놓고 뜨거운 공방이 예상된다. 홍명보 감독이 판단할 문제지만 결코 간단한 사안은 아니다. 팀 정신을 강조하는 홍 감독이 단지 기량 하나만 놓고 뽑았을 때의 후폭풍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어지러운 한국 축구다.
스포츠 2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