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데뷔 15년 만에 1000만 영화를 내놓게 된 류승완은 “우리 다음의 세대와도 소통하고 싶다고 생각한, 나의 첫 번째 영화”라고 ‘베테랑’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스포츠동아DB
“영화 찍기전 난 기자…주변의 일 집중 취재
다음 세대에게 패배감 물려주고 싶지 않다”
‘베테랑’의 류승완(42) 감독은 2000년 장편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내놓고 햇수로 15년 만에 ‘1000만 클럽’에 진입하게 된다. 2012년 ‘베를린’으로 716만 관객을 동원하며 자신의 흥행 기록을 뛰어넘어 역대 한국영화 흥행 톱10 진입까지 앞뒀다.
“내 스스로 분노해왔던 것들, 그 모든 걸 담았다.”
류승완 감독은 ‘베테랑’에 담은 이야기, 그 안에 녹여 넣은 여러 에피소드에 그 자신 역시 “분노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출자와 관객의 눈높이는 그렇게 적중했다.
-통쾌하고 시원하다. 그 힘으로 흥행까지 성공했다.
“의도했다. 내 지향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져야 하나. 내 주인공은 왜 늘 지고 살까. 이번엔 지고 싶지 않았다.”
-결말을 놓고 해석이 다양하다.
“사회가 얼마나 부조리하면, 잘못이 많으면, 이럴까 싶다. 조태오(유아인)에게 수갑까지 채우지 않았나. 그런데도 의심한다. 공복을 입은 이들이 조태오 손목에 수갑을 채우는 장면이 내게는 가장 중요했다. 사법제도 안에서 우리가 할 일은 다 했다. 자, 이제, 정의롭지 않은 세력에 대해 어떤 심판이 내려지는지, 지켜보자. 그런 마음이다.”
류 감독은 “나의 화가 풀리지 않는, 실제 사건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베테랑’의 출발이다. 2009년 즈음 영화 ‘부당거래’ 제작 때 만난 형사들로부터 들은 실제 사건은 오랫동안 그의 기억에서 떠나지 않았다. 남북한 첩보전을 그린 ‘베를린’의 촬영을 끝내자마자 새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어두운 영화를 끝낸 반작용이었을까. 무거운 얘기보다 쾌감 있는 영화를 원했다.”
-영화가 다룬 실제 사건은 뭐가 있나.
“하하! 없다고 해야지. 무슨 답을 해야 할까. 영화를 본 관객이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구나’ 인식하는 것 같다. 그 피해가 우리 삶에 직접 다가올 수도 있구나. 그렇게 인지하는 것도 같다.”
영화 ‘베테랑’의 한 장면. 사진제공|외유내강
-취재를 많이 하기로 유명하다.
“내가 영화를 준비할 땐 (언론사가 밀집한)서울 광화문에 있을 때가 많다. 액션 코미디 ‘아라한 장풍대작전’을 찍을 때도 취재 많이 했다. 다루려는 분야를 망라해 여러 사람을 만난다. 그렇게 핵심인물의 주변부터 접근해 거리를 좁혀나간다. 재벌 3세를 직접 만나진 않았다. 대신 재벌가를 집중 취재한 기자와 형사들, 그들의 양복재단사, 다녀간 술집의 목격자를 만났다. 과거 기업에서 일했던 분들까지.”
-그래서 더 현실이 반영된 듯한 느낌이 든다.
“지금 돌아가는 사회가, 우리의 자존감을 너무 떨어트리고 있는 건 아닐까. 경제적 가치에 대비해 나의 행복을 평가하게 만드는 것처럼. 아이들까지 모험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세상 같다. 사실 말은 이렇게 해도, 나 역시 순간순간 불의와 타협하고 산다. 염치없는 삶 아닌가.”
관객들은 ‘베테랑’에서 여러 영화의 오마주를 발견하기도 한다. 류 감독은 “청룽(성룡)의 영화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영향은 있다”고 했다.
“1980년대 형사 영화를 좋아한다. ‘비버리 힐스 캅’, ‘48시간’ 같은 영화다. 어릴 때 ‘리썰 웨폰’ 같은 영화도 만들어보고 싶었다. (오마주가)의도적이라기보다 어린 시절 좋아했던 영화들, 그렇게 습관이 되어 버린 나의 취향이다. 슬랩스틱 코미디도 좋다. 휴일이면 세 아들과 뒹굴면서 ‘변방의 북소리’를 보는 게 하나의 낙이다. 순수한 무성영화의 액션이 좋다.”
-차기작은.
“‘군함도’(일제강점기 조선인이 강제징용된 섬에서 벌어진 이야기)와 ‘베테랑’ 후속편까지 몇 개의 프로젝트가 있다. 어떤 걸 먼저 시작할지 아직 모른다. ‘베를린2’도 있다. 지금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이번엔 현실과 더 밀착돼 있는 사건을 그리려고 한다. 하정우의 참여? 그가 없으면 후속편도 없겠지.”
-‘베테랑2’가 예고됐으니 묻는다. 서도철 형사(황정민)와 조태오는 지금 뭘 하고 있나.
“서도철은 아마 경찰청에 갔겠지. 상징적으로라도, 대외적인 액션으로라도 계급을 높여주지 않았을까. 물론 나중에 그가 원하지 않는 삶을 살 수도 있겠지만. 조태오? 글쎄. 내가 할 수 있는, 사법제도의 최선으로 결말지었다.”
류 감독은 “동세대와의 소통이 중요한 것 같다”고 했다.
“우리 다음의 세대와도 소통하고 싶다고 생각한, 나의 첫 번째 영화가 ‘베테랑’이다. 후배들에게까지 패배감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 그래서 저항해 보자는 것이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