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부터 엑소까지] 무대서 ‘텀블링’ 하던 아이돌, 이젠 ‘스토리텔링’을 논하다

입력 2014-03-25 06:4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우리 가요계에 본격적인 아이돌 시대가 열린 건 1990년대. 이후 아이돌은 끊임없이 진화를 거듭해왔다. 아이돌의 태동기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소방차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팬덤을 알린 H.O.T와 일본에서 케이팝 신드롬을 촉발한 동방신기와 빅뱅, 엑소가 아이돌의 역사를 잇고 있다.(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스포츠동아DB·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YG엔터테인먼트

■ 아이돌, 진화의 역사

‘10대들이 우상처럼 떠받들고 열광하는 10대 후반∼20대 초반의 댄스(그룹)가수.’ 대중문화계 ‘아이돌’의 일반화한 의미다. 그 전형적인 ‘아이돌 팝 그룹’으로 처음 스타덤을 형성한 건 소방차다. 이후 1992년부터 노이즈,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등이 잇따라 데뷔하며 댄스음악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하지만 1996년 H.O.T를 시작으로 ‘기획형 아이돌’ 시대가 열리면서 한국 가요계는 새로운 세상을 맞았다. 이후 신화와 god, 동방신기, 빅뱅을 거쳐 엑소에 이르기까지 십수년간 기획력과 자본이 투입되고, ‘우성인자’가 지속적으로 개발되면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그리고 아이돌은 이제 대중음악의 중심축이 됐다. 콘텐츠로서 강력한 파워를 가진 아이돌, 그 진화의 역사를 남성그룹의 활약을 통해 따라간다.


1987년 ‘백댄서 신화’ 소방차가 원조 아이돌
1992년 ‘문화대통령’ 서태지와 아이들 등장

1996년 ‘기획형 아이돌’ 1세대 H.O.T 탄생
비주얼은 물론 ‘노래도 되는’ 동방신기 인기

빅뱅, 작사·작곡 기본 ‘아티스트’ 시대 열고
엑소에 이르러 노래와 춤으로 ‘스토리’까지



● 소방차의 등장, ‘아이돌 그룹’의 태동

1987년 ‘어젯밤 이야기’로 데뷔한 소방차는 개성 강한 외모와 화려한 퍼포먼스를 앞세운 댄스그룹으로 당시 10대 소녀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들이 입었던 배기팬츠, 이른바 승마바지는 10대들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소방차는 ‘기획 콘텐츠’가 아니었다. 1980년대 초 인기 프로그램 KBS 2TV ‘젊음의 행진’ 전속댄스팀 ‘짝꿍’에서 활약하던 동갑내기 친구 정원관 이상원 김태형이 가수 구창모의 ‘방황’ 무대에서 백댄서로 활동하다 기획사를 찾아가 가수로 데뷔했다. 당시 이들은 이미 20대 중반이었다. ‘문화대통령’이란 수식어까지 얻은 서태지와 아이들을, 지금의 전형적인 아이돌 그룹의 시초로 보는 시각도 많다. 음악과 패션뿐 아니라 프로듀싱 능력, 대중적 영향력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1992년 데뷔한 이들 역시 ‘기획’ 그룹은 아니었고, 서태지가 솔로음반을 준비하다 춤을 가르치던 양현석을 합류시키고 뒤늦게 이주노를 영입하면서 3인조가 됐다.


● H.O.T, ‘기획형 아이돌’의 시작

연예기획사의 ‘기획상품’으로 아이돌 그룹이 탄생한 건 1996년. H.O.T가 시초다. 때문에 H.O.T를 아이돌 1세대로 꼽는 시각이 대다수다. H.O.T 이전 그룹의 멤버 구성은 소개와 추천으로 이뤄졌지만, H.O.T는 특정한 콘셉트를 염두에 두고 ‘캐스팅’과 ‘오디션’ 과정을 통해 멤버를 선발했다. 또 일정 기간 ‘트레이닝’을 거치는 ‘시스템’을 통해 만들어진 기획형 아이돌의 원형이다. H.O.T는 반항아 콘셉트의 화려한 비주얼과 강렬한 음악으로 데뷔와 동시에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이후 젝스키스, 신화 등이 탄생하며 아이돌 시장은 호황을 누렸다. 1세대 ‘기획형 아이돌’은 ‘시각적 효과’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했다. 각 멤버별로 노래와 랩, 춤, 외모 등 ‘역할’이 따로 있었다. 가창력 있는 멤버는 1명이면 충분했고, 노래보다 춤이나 외모로 소녀팬들에게 어필하는 멤버들이 많았다. 패션도 기성복보다는 그때그때 콘셉트에 맞는 의상을 별도 제작했다. 음악에서도 도입부 8마디의 부드러운 멜로디, 반복되는 후렴구(후크), 간주 부분의 랩 형태가 많아서 ‘아이돌 음악’으로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


● 동방신기, ‘라이브형 아이돌’의 탄생

2004년 동방신기의 등장은 아이돌 역사의 새로운 전기가 된다. 이전까지 댄스그룹이 멤버마다 역할이 나뉜 것과 달리 동방신기는 ‘아카펠라 보이그룹’이란 독특한 정체성을 내세워 멤버 모두 노래와 춤 실력이 뛰어났으며, 외모도 상당했다. 이들은 데뷔 음반에서 아카펠라를 구사하며 ‘라이브형 아이돌’로 불렸다. 당시 ‘아이돌의 한계’로 비판받던 가창력 논란에서도 비껴나 아이돌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사실 동방신기는 당시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에서 각각 데뷔를 준비하던 여러 연습생 그룹에서 리드 보컬만 따로 모은 팀이었다. 아울러 동방신기가 데뷔 음반을, 당시에는 보편화 하지 않았던 싱글로 발표한 것도 눈여겨봐야 하는 대목이다. 축소돼 가는 음반업계 변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이기 때문이다.


● 빅뱅, ‘아티스트형 아이돌’ 선언

2006년 데뷔한 빅뱅 역시 아이돌 역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 빅뱅은 데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통해 멤버 모두가 작사, 작곡, 프로듀싱 능력을 가졌다는 점이 부각됐다. ‘아티스트형 아이돌’로 불리면서 격변하는 아이돌 역사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다. 특히 빅뱅 지드래곤의 문화·사회적 영향력은 여느 톱스타보다 크다. 빅뱅 이후 비스트, 블락비도 각각 용준형, 지코가 팀의 노래를 프로듀싱하면서 ‘아티스트형 아이돌’의 계보를 이어갔고, 이제 아이돌 그룹에 작사, 작곡 능력이 뛰어난 멤버를 포함하는 것은 중요한 미덕이 되고 있다.


● 엑소, ‘스토리텔링 퍼포먼스’의 대표주자

현재 남성 아이돌 그룹의 트렌드는 스토리텔링 퍼포먼스다. 엑소 빅스 방탄소년단 등은 군무가 아니라 노래 속에 담긴 스토리를 춤으로 구현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특히 엑소는 작년 첫 정규앨범 ‘으르렁’을 100만장(리패키지 및 중국어 버전 포함) 이상 판매하며 빈사상태의 음반시장에서 신기원을 이뤘다. 잘 생긴 외모와 뛰어난 가창력,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음악과 화려한 퍼포먼스 그리고 자작곡 능력까지, 모든 부분에서 뛰어난 실력을 갖춘 엑소는 아이돌 팬덤의 저변까지 크게 넓히며 현재 아이돌 그룹의 ‘하이엔드(최고급) 사양’으로 꼽힌다.

김원겸 기자 gyumm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ziodadi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