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설경구는 영화 ‘킹메이커’에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모티브 삼은 정치인 김운범을 “내 방식대로 연기했다”면서 “그게 극의 재미를 살리는 방법이라 확신했다”고 소신을 드러냈다.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26일 개봉하는 화제작 ‘킹메이커’ 설경구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는데…
눈 떠보니 촬영장에 있더라
나의 최고 작품은 ‘박하사탕’
‘삶은 아름답다’ 대사 못잊어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는데….”어떻게든 피하고 싶었는데…
눈 떠보니 촬영장에 있더라
나의 최고 작품은 ‘박하사탕’
‘삶은 아름답다’ 대사 못잊어
배우 설경구(55)가 말을 잇다 말고 눈을 질끈 감았다. 26일 개봉하는 영화 ‘킹메이커’(감독 변성현·제작 씨앗필름)를 떠올리다 불쑥 속마음을 내뱉은 것이다. 1971년 4월 대통령선거를 배경으로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참모 고 엄창록의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가 “어느 하나 쉽지 않아” 처음에는 “눈길도 가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그랬던 영화를 마침내 극장에 내건다. 시나리오를 받은 2016년 이후 6년 만이다. 설경구는 “어느새 눈 떠보니 촬영장에 서 있더라”며 “인생은 예측하지 않은 일투성이”라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캐릭터 이름까지 바꿨다”
극중 대선에 출마하는 정치인 김운범을 연기한다. 1971년 대선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맞붙은 제1야당 후보 김 전 대통령을 본뜬 캐릭터다. 배우 이선균이 엄창록을 모티브 삼은 서창대 역을 맡아 ‘킹메이커’로 활약한다.
“지난해 내놓은 영화 ‘자산어보’에서도 실존 인물인 정약전을 연기했지만, 이처럼 부담을 느끼진 않았어요. 김 전 대통령은 인터넷에 조금만 검색해도 전부 알 수 있는, 모두의 기억에 딱 떠오르는 근현대사 인물이잖아요. 변 감독에게 캐릭터 이름을 부디 바꿔 달라고 졸랐어요. 이름을 바꿔 압박감이 조금 가셨지만,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아직도 긴장돼요.”
전라도 사투리 등 김대중 대통령의 특징을 “굳이 따라하지”는 않았다. 대신 “인간 김운범”에 초점을 맞췄다. “나만의 표현방식”과 “실제”의 가운데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소재와 이야기가 어려웠지만 2016년 ‘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으로 만난 변성현 감독 때문에 출연을 결심했어요. 너무나 잘 알려진 이야기를 대체 어떻게 만들까 궁금하더라고요. 다만 대선(3월9일)을 40여일 앞둔 개봉 시기만은 당황스러워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우리 모두 예상하지 못했어요. 부담스럽지만 어쩔 수 없죠.”
●“나를 만든 ‘킹메이커’는?”
1993년 연극 ‘심바새매’로 데뷔해 내년 활동 30주년이다. 영화에서 김운범 옆을 지킨 서창대처럼, 그에게도 ‘킹메이커’가 있느냐 묻자 “아무도 없어요, 아무도!”라며 웃었다.
“도저히 한 명만 꼽기 어렵죠. 연극무대와 스크린을 오가면서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박하사탕’ 이창동 감독부터 최근 변성현 감독까지 전부가 나에게 영감을 줬죠. 이선균 씨처럼 상대배우도 마찬가지예요. 작품 안에서 제가 의지할 사람은 오로지 파트너밖에는 없거든요. 끊임없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성장해왔어요.”
그를 만든 사람은 꼽기 힘들지만, ‘작품’만은 명확하다. 설경구의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 시킨 2000년 영화 ‘박하사탕’이다.
“제게 최고의 작품은 과거에도 앞으로도 ‘박하사탕’이에요. 카메라 앞에서 얼굴에 경련이 일 정도로 떨리는 모습을 30년간 연기해온 지금은 도저히 표현할 수 없죠. 복합적인 의미에서 그 영화를 잊을 수 없어요. ‘삶은 아름답다’라는 영화 속 대사는 요즘에도 사인할 때마다 적어 넣어요. 거기에 한 단어를 추가하죠. ‘그래도, 삶은 아름답다’라고요.”
유지혜 기자 yjh030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