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자평영간판스타정슬기]‘2초’다이어트물속에살아요

입력 2008-05-1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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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느리지만평영이좋았다작년50·100·200m한국新
○기록단축 재미로 지루함 이겨 정슬기(20·연세대)의 하루는 새벽 4시45분에 시작된다. 5시10분부터 7시10분까지의 새벽훈련. 잠시 쉴 틈도 없이 7시 반 태릉을 나선다.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싣고 도착한 곳은 신촌. 부랴부랴 9시 수업에 도착. 스포츠문화사와 사회체육과 컴퓨터 활용 강의를 듣고 다시 태릉으로 향한다. 본격적인 오후 훈련을 위해서다. 봄볕에 더욱 반짝이는 캠퍼스의 젊음과 낭만의 거리를 뒤로하며 정슬기는 메달 꿈을 키운다. 점심식사 후 오후 3시부터 4시까지는 웨이트 트레이닝, 4시부터 4시 반까지는 서키트트레이닝, 4시 반부터 6시 반까지는 수중훈련이다. 하루에 헤엄치는 거리는 1만3000m. 월, 화, 목, 금의 일과다. 수요일은 체력조절을 위해 오후훈련만 소화하고, 토요일은 오전훈련만 한다. 휴일은 없다. 일요일에도 오후 4시부터 5시까지 자율훈련. 2004년 10월, 서울체고 1학년 때 태극마크를 단 이후 정슬기의 1주일은 이렇게 채워졌다. 힘들고 지루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좋아서 하는 건데요, 뭘. 솔직히 기록이 안나오면 운동하기 싫을 때도 있어요. 그래도 기록을 줄일 때 뿌듯함이 있으니 재밌습니다.” ○무아(無我)에서 나오는 괴력 정슬기의 최근 페이스는 놀랍다. 2007태국하계유니버시아드 평영50m, 100m, 200m에서 한국기록을 작성한 후 2007전국체전에서 평영50m, 2008제주한라배에서 평영100m 기록을 다시 고쳐 썼다. 2008년 4월 동아수영대회에서는 주종목 평영200m에서 2분25초07로 올 시즌 세계랭킹 6위를 기록했다. 자신의 최고기록(2분24초67)에는 못 미쳤지만 초반부터 독주한 점을 감안한다면 한국기록 이상이라는 평. 2초 가량만 단축시킨다면 베이징 올림픽 메달권 진입이 가능하다. 최근 기록경신은 초반 스피드가 향상된 결과다. 정슬기는 “근육이 원래 잘 안 생기는 체질”이라면서 “타고난 것은 없는 것 같다”고 웃었다. 최대근력 수준의 무게를 빠른 속도로 들어올리는 웨이트트레이닝을 통해 순발력을 향상시켰다. “그나마 남들보다 습득이 빠른 것은 지구력 뿐”이라고 했다. 정슬기는 막판 50m에 강하다. “(올림픽에서) 150m까지만 똑같이 들어가면 금메달도 가능하다”고 말할 정도다. 정슬기의 50m 구간별 피치 수는 17개, 19개, 20개, 24개. 150m까지는 피치 수를 세면서 나간다. 반복훈련을 하다보니 “의식을 하지 않아도 세어진다”고 했다. 스피드에 변함이 없는데도 피치 수가 적은 날은 컨디션이 좋은 것. “그 만큼 물을 잘 타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기분이 좋다”고 했다. 피치 수를 줄이면 막판 스퍼트를 위한 힘도 비축할 수 있다. 마지막 50m에서는 피치 수를 셀 겨를이 없다. “마지막 남은 힘까지 짜내야 하기 때문에 정신을 놓고 간다”고 했다. 무아(無我)에서 나오는 괴력이다. ○수영이 제일 좋았다 수영장 안에서는 거침이 없지만 하지만 수영장 밖에서는 겁이 많다. 인터뷰 도중 벌이 날아들자 화들짝 놀라기도 하고, “바다수영은 밑이 안보여 무섭다”고 했다. 수영을 처음 시작할 때는 수영장 물조차 두려워했다. 정슬기가 처음 수영을 시작한 것은 여섯살. 어머니 신미숙씨는 딸의 무서움을 없애주기 위해 같이 물속에 뛰어들었다. 덕분에 어머니의 수영실력도 수준급. 어머니는 외동딸에게 많은 것들을 가르쳐 주고 싶었다. 정슬기는 수영 뿐만 아니라 피아노·미술·웅변 등도 배웠다. 미술은 소질이 없었다. 사람의 자세한 인상 묘사가 어려웠다. 웅변은 워낙 내성적인 성격이라 싫었다. 피아노는 다른 것보다는 나았지만 연습이 지루했다. 다니던 수영장이 없어져 여덟살 때 수영을 그만뒀지만 수영이 좋아 초등학교 2학년 때 다시 시작했다. 가장 느린 영법이지만 정슬기는 평영이 좋았다. 초등학교 2학년 첫 대회에서 메달을 땄고, 6학년 때 본격적인 선수생활을 위해 정든 학교를 옮겼다. 정슬기는 “그 이후로 한 눈을 판 적이 없다”고 했다. 정슬기를 전담하는 우원기 코치는 “(정)슬기의 강점은 성실함”이라는 이야기를 입버릇처럼 한다. 그 우직함 하나로 지금까지 왔다. ○스포트라이트 없어서 좋아요 한국수영은 박태환(19·단국대)에게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쏠려있다. 정슬기 만큼 세계기록에 근접한 여자선수도 없었다는 점에서 정슬기는 불운한 선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슬기의 이야기는 달랐다. 2006도하아시안게임, 정슬기는 처음으로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주위에서 금메달도 딸 수 있다고 해서 나도 따는 줄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부담과 긴장을 털어내지 못했다. 동메달도 값진 것이었지만 정슬기에게는 아쉬움이 남았다. 가끔씩 식당에서 “TV에서 봤다”는 사람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정슬기를 알아보는 사람은 드물다. “지금은 관심이 (박)태환이에게 집중되니까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기사는 모두 검색해 본다고.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다면 기사가 넘쳐날 것이다. 새벽훈련 때문에 밤 9시 반이면 잠자리에 드는 정슬기, 올림픽 직후에는 기사 검색으로 취침시간이 늦춰질 법도 하다. 태릉=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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