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바닷길 요트 일주] 가슴으로 닿은 독도…“해냈다! 한반도 일주”

입력 2010-05-2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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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6마일 전, 바다에 어둠이 내리고 있는 가운데 허영만 선장(오른쪽 맨 앞)과 집단가출호 대원들이 미리 준비한 태극기 등 깃발을 펼쳐 보이고 있다. 이 때의 풍속은 22노트. 바람이 강해 깃발을 똑바로 들고 있기조차 어려웠는데 쉴새없이 들이닥치는 파도가 잠깐 멈춘 사이 서둘러 촬영한 사진이다.

18. 독도, 국토의 끝에 서다

거친 바다를 뚫고 달린 6시간

독도가 안개 사이로 얼굴을 내민다
1년 여정, 3000km 뱃길의 종착지
하지만 파도는 점점 거세지고…


독도경비대 교신…역시나 “상륙 불가”
선원들은 그제야 서로를 껴안는다
집단가출호의 성공 완주를 자축하며


사동항에서 바람은 밤새도록 미친 듯 휘몰아쳤다. 커피를 끓여 마시고 머리맡에 놔두었던 코펠 뚜껑이 바람에 날려 댕그렁거리며 굴러가는 소리를 잠결에 들으면서 이러다가 침낭 속에 들어가 있는 채로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는 것 아닌가 싶었다.

새벽에 바람은 남쪽으로 돌았다. 남쪽이 열린 사동항은 더 이상 안전한 항구가 아니었다. 바람의 뒤편 저동항으로 배를 옮겼다.

사동항에서 저동항까지 울릉도 남동쪽 바다는 8km에 불과했지만 사납게 들끓어 버거웠다. 울릉 기상대에 문의한 결과 오후부터 바람의 예봉이 꺾일 것이지만 파도가 높아 독도 선착장에 접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답변이다. 실망이다.

1년을 오로지 독도를 바라보고 달려왔는데 상륙하지 못한다니…. 바람이 자기를 기다리며 저동항 앞에서 수중촬영작업을 시작한다.

김상덕 대원이 카메라를 들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해병대 출신인 김상덕 대원은 스카이다이빙 협회장을 지낸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로 스쿠버다이빙 마스터다이버 자격증 소지자이다.

그런데 뭔가 잘못된 모양이다. 약속된 시각보다 빨리 수면 위로 떠오른 김상덕 대원. 갑판 위로 끌어올려진 김상덕 대원은 한 손에는 뜻밖에도 커다란 문어 한 마리가 들려 있었다. 김 대원으로부터 물속에서 있었던 ‘사건’ 얘기를 듣고는 대원들은 가슴을 쓸어내려야했다.

김대원은 다이빙 중 살생이나 채취를 절대 하지 않는 골수 에코-다이버(eco-diver). 촬영 중이던 그에게 문어 한 마리가 달려들었고 그는 문어를 피하려 했다. 그러나 문어는 무슨 억하심정이 있었는지 죽자 사자 들러붙었는데 하필이면 호흡기를 붙들고 늘어졌다.

“요놈이 작정을 하고 호흡기에 달라붙어서 숨을 못 쉬게 해. 얼굴 전체가 문어발에 휘감겨 당황스럽더라고. 문어가 붙은 호흡기를 버리고 예비용 옥토퍼스를 찾아 물었는데도 요 녀석이 계속 공격을 하길래 큰일 나겠다 싶어 그냥 움켜쥐고 올라온 거지.”

문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길이가 90cm가까이 되는 큰 놈이어서 노련한 다이버가 아니었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울릉도 저동항 앞에서 수중촬영 중 김상덕 대원(왼쪽 다이빙 수트를 벗고 있는 이)을 위험에 빠뜨렸던 대형 문어를 이진원 대원이 힘겹게 들고 있다. 뒤에서 감탄스런 눈길로 문어를 바라보고 있는 이는 임대식 대원.



문어 소동이 있는 동안 바람 끝이 살짝 누그러졌다. 집단가출호는 오후 1시에 저동항을 떠나 독도를 향해 돛을 올렸다. 바람은 오늘 오후 살짝 약해졌다 자정을 기해 다시 힘을 얻어 3∼4일간 비교적 강한 바람이 계속될 것이다. 그것은 지금 출발하지 않으면 기회가 없다는 뜻이었고 우리는 망설임 없이 거칠게 몸을 뒤채는 바다로 나갔다.

20노트의 남남서풍을 받은 배는 설계 최대 속도를 냈다. 파도는 2.5m로 어제보다 높아 20초 간격으로 갑판을 덮쳤다.

옅은 안개 사이로 독도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해가 기울기 시작한 즈음. 독도 상륙은 당연히 불가능할 터였으나 혹시나 하는 아쉬움에 무선 교신을 통해 독도경비대에 접안 가능성 여부를 타진했다. 돌아온 대답은 역시 불가.

어둠이 밀려오면서 파도는 더 높아졌다. 독도 등대의 불빛이 마치 무도회장의 회전 조명처럼 어지럽게 흔들린다. 등대는 본래 그 자리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었고 흔들리는 것은 바로 우리였다. 1년 동안 높은 파도 거친 물결을 이겨내고 3000km를 달려왔는데 막상 독도를 눈앞에 두고 발을 딛지 못한다는 현실이 야속했으나 우리의 운은 거기까지였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 악수를 나누며 독도에 도착, 전국일주 항해의 완성을 자축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바다는 어서 돌아가라는 듯 우리의 등을 계속 떠밀었다. 22노트로 강해진 바람을 뚫고 독도를 반 시계방향으로 돌았다.

“이거 이러다가 바다에서 등정 시비 생기는 거 아냐? 독도에 상륙을 못했으니 독도에 못 간 거라고 하면 할 말이 없는데….”

허 선장의 조크에 대원들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남은 것은 삼척까지 241km를 안전하게 회항하는 일.

바람이 걷잡을 수 없이 불어대기 시작해 집세일만 남기고 메인세일을 접어 들이려 했으나 강풍 속에서 메인세일을 내리는 일은 만만찮았다. 설상가상 돛의 하단부가 마스트 홈에 단단히 끼어버리는 바람에 30여분에 걸친 메인세일 회수작업은 사투였다.

동쪽 바다에서 해는 빠르게 저물었다. 오른쪽 수평선 위로 보이는 독도는 이미 등대불을 켜고 있다. 왼쪽으로 급격히 힐링된 갑판의 기울기에서 바람의 세기를 짐작할 수 있다. 독도 접안은 이미 물 건너갔으므로 이 때부터 대원들의 유일한 관심사는 무사히 육지까지 돌아가는 것이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독도를 뒤로하고 울릉도 10마일 남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등 뒤에서는 독도 등대가 멀어져갔고 앞에는 시커먼 바다가 격렬히 몸부림을 치며 펼쳐져 있었다. 배에서는 모든 게 젖었고 모든 게 흔들렸다.

3시간을 배를 몰고 3시간은 선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으나 젖은 옷에 신발을 신은 채 안전벨트로 포박 당한 상태에서 숙면을 취하기는 애초에 글렀다. 자정을 넘기며 바람은 26노트까지 강해졌다. 새벽 1시께 집세일을 조정하는 줄이 끊어져 잠시 소동이 있었으나 이제 우리는 그 정도의 돌발 상황 쯤은 한쪽 눈을 감고도 해결할 만큼 능숙해져 있었다.

임대식 대원이 바람에 날리는 집세일의 한쪽 끝을 손으로 잡고 있다가 손톱이 뒤집어지는 부상을 당한 것을 빼고는 일사천리로 끊어진 줄을 교체해 배를 정상으로 회복시켰다. 선실 입구를 통해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와 입구 쪽에서 잠을 자던 휴식 조 대원들은 누운 채 물벼락을 맞았다.

아무리 남풍이라지만, 5월의 밤바다에서 바닷물을 뒤집어쓰며 두세 시간씩 배를 조종하면 체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대원들은 체온을 나누기 위해 키를 잡은 헬름즈맨을 중심으로 다닥다닥 붙어 앉았지만 그나마 서로 몸이 닿은 부분이 따뜻하게 느껴질 만하면 어김없이 파도가 덮쳐 쫄딱 젖게 만들곤 했다.

바다는 우악스러웠지만 별 총총한 밤하늘은 아이맥스 영화처럼 환상 그 자체. 귀를 찢는 하이옥타브의 바람소리 속에서 별빛이 흔들려 야간항해는 춥고 고달팠지만 한편으로 가슴 저리도록 아름다웠다.

사방에 불빛이라곤 없는 망망대해에서의 처절하고 완벽한 고립. 해경 경비정 ‘해우리 9호’는 교신만 될 뿐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육지가 있는 서쪽을 향해 바람처럼 내달리고 있었고 그것은 GPS 모니터 상에 뚜렷한 선으로 나타났다. 끝없는 버티기 속에서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은 아침이 왔고, 전국일주의 끝도 함께 다가오고 있었다.



연안이 가까워올수록 파도는 잔잔해져 밤새 젖었던 옷이 말랐다. 피곤에 절어 퀭한 눈의 대원들은 1년 동안 지나온 멀고먼 물길을 되새기며 감회에 젖어들었다. 집단가출호는 마치 쾌속정처럼 달려, 오후 4시에 삼척항에 골인했다.

허영만 선장이 배낭에서 샴페인을 꺼내 대원들에게 뿌렸고 우리는 서로를 포옹하며 감격했다. 독도를 떠난 지 20시간, 울릉도를 떠난 지 28시간 만이었다.

송철웅 아웃도어 칼럼니스트 cafe.naver.com/grouprunway
사진|이정식 스포츠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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