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원더스 이한별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 프로 유니폼 바치고 싶어요”

입력 2016-06-20 18: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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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닷컴]

지난 2011년 9월15일 창단해 2014년 9월 11일 해체를 선언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진 ‘한국 최초의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

꿈을 포기했던 선수들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마련해주며 2012년 이희성(LG)을 시작으로 총 22명의 선수가 프로에 입단하는 성과를 냈던 고양 원더스는 창단 3년 만에 해체를 선언한 뒤 팬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가고 있다. 그 때 그 선수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투수 이한별은 고양 원더스의 창단을 함께 한 멤버였다. 동료들 사이에서 당시 고양 원더스 감독이었던 김성근 현 한화 이글스 감독의 양아들이라 불릴 정도로 큰 관심을 받았던 그였다.

프로의 꿈을 안고 성장하던 그는 공익근무 차 잠시 팀을 떠난 사이 원더스 해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

중앙대학교 재학 시절 4년 통산 평균자책점 1.98이라는 호성적을 거두고도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았던 고양 원더스였다. 원더스 해체로 평탄하지 못했던 그의 야구 인생에 또 다시 무적 신세라는 풍파가 밀려왔다.

한순간에 팀을 잃었지만 공익근무 중이었던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개인 운동에 열중하는 것 밖에 없었다. 실낱같은 희망이었던 팀이 해체된 후 그는 다시 앞날을 알 수 없는 막막함에 직면했다.

다행히도 주변에 그를 돕는 사람이 많았다. 고양 원더스 코치였던 곽채진 언북중학교 감독은 그에게 운동에 전념하라며 2년 치 헬스장 비용을 지불해주었고, 인천 위너스포츠재활센터 홍영식 센터장도 큰 도움을 줬다.

집 근처 사회인야구 레슨 장에서도 개인 운동과 레슨을 하도록 도와주었고, 함께 야구를 했던 동료들이 코칭스태프로 있는 부천중학교 야구부에서도 그의 운동을 도왔다. 이들의 도움은 팀을 잃은 그가 다시 희망을 품을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됐다.

그렇게 다시 일어나던 그에게 더 큰 아픔이 다가왔다.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사망 소식이었다.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던 그의 어머니는 갑자기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쓰러졌고, 병원으로 옮겼으나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어머니의 죽음은 그에게 너무나 큰 시련이었다. 그는 “어머니께서 원더스 시합을 매일 보러오셨다. 내 뒷바라지만 하다 돌아가신 것 같아 죄송한 마음뿐이다. 돌아가신 뒤 일주일 정도는 어머니가 설거지하시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리더라”며 당시의 힘들었던 심경을 전했다. 안산공고 선배 김광현(SK) 등 동료들이 빈소를 찾아 그를 위로했다.

가장 큰 지원군이었던 어머니를 잃은 그는 야구를 포기하려는 생각까지도 했었다. 하지만 결국 그가 돌아갈 곳은 야구였다. 자신의 일처럼 신경 써주는 여자친구와 여자친구의 어머니도 그를 일어나게 한 원동력이 됐다.


또 다시 일어나기로 마음먹은 그는 프로 입단 테스트를 받기 위해 길을 찾아 나섰다. 원더스 시절 투수코치로 인연을 맺은 LG 이상훈 피칭 아카데미 원장에게 연락을 해봤지만 “소속이 없어 내가 구단에 이야기 해주기는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

자신에게 큰 애정을 주던 김성근 감독에게는 차마 연락을 하지 못했다. 그는 “지금은 나아지고 있지만 시즌 초 한화 성적도 좋지 않았고, 감독님도 입원하시고해서 연락드리기가 죄송스러웠다. 나 같은 사람이 주변에 얼마나 많으시겠나. 부담을 드리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래도 감독님이 원더스 시절에 마운드에 많이 올려주셔서 내 공을 보여줄 수 있었고 기회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는 것 같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화환과 문자메시지를 보내주시면서 ‘못 가서 미안하다’고 하셨다”며 은사에게 고마운 마음을 털어놨다.

이한별은 “원더스 첫 해에 외국인 선수, 국내 선수들 사이에서 경기에 나가기 위한 엄청난 경쟁이 있었다. 결국 국내 선수 중에는 유일하게 선발에서 던졌다. 2군 선수들을 상대하면서 경험도 많이 쌓았고 많은 도움이 됐다”고 고양 원더스 첫 시즌을 되돌아봤다.

이어 “김성근 감독님은 공이 아무리 빨라도 제구력이 좋지 않은 투수는 안 쓰셨던 것 같다. 쉬는 날에도 릴리스 포인트를 잡도록 많이 지도를 해주셨다. 덕분에 제구가 좋아지고 볼 끝에 힘도 생긴 것 같다”며 거듭 김성근 감독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기약 없이 개인 운동을 묵묵히 이어가던 그에게 최근 모 프로 구단에서 입단 테스트 제의가 들어왔다. 몸을 100%로 만들면 테스트를 보러 오라는 제의였다. 현재 그는 이 테스트를 위해 운동에만 매진 중이다. 그에게는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절실한 기회다.

그는 “테스트 보러오라는 이야기를 듣고 오전에는 웨이트, 오후에는 보강 운동, 끝나면 러닝과 피칭 위주로 운동 중이다. 다른 생각 안 하고 운동에만 열중하기 위해서 일부러 스케줄을 빡빡하게 잡았다”며 테스트에 임하는 자세를 밝혔다.

또 “아버지와 동생도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도전해보라고 격려해준다. 공은 빠르지 않지만 컨트롤에는 자신이 있다. 대학 때는 선배 (유)희관(두산) 형 오른손 버전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구속은 내가 더 빨랐다(웃음)”고 말했다.

이어 “어떤 상황에서든 마운드에만 올라갈 수 있다면 항상 자신 있다. 공익근무 2년 동안 공을 던지지 않았으니 더 싱싱하지 않을까? 내 야구 인생이 짧게 끝나더라도 프로 유니폼 한 번 입어보고 싶다. 프로 유니폼을 들고 어머니를 찾아가고 싶다. 프로구단에서 공을 던질 기회가 주어진다면 앞으로 후회도 미련도 없을 것 같다”는 바람을 전했다.


함께 고양원더스에서 프로의 꿈을 키우던 선수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는 “연락되는 사람 중 2~3명 정도는 계속 야구를 놓지 않고 있다. 그 외에는 아버지 사업을 돕거나 직장에 다니는 사람도 있고, 군대 갈 나이가 되어 현역으로 군 복무 중인 동생들도 많다”고 원더스 출신 선수들의 근황을 전했다.

이들에게 이한별은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선수들이 많다. 비록 원더스는 없어졌지만 다들 노력해서 프로에 가서 다 같이 이슈가 한 번 되어보고 싶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열정에게 기회를’이라는 원더스의 슬로건처럼, 원더스가 해체되고 야구팬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져가고 있는 지금도 선수들의 열정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동아닷컴 송치훈 기자 sch5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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