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지방법원
설명의무·주의의무 위반…환자 배우자 대리서명, 영구장애 등 설명 제외, 의사 시술상 과실·경과관찰 소홀도 인정
내시경 레이저 감압술 치료 후 합병증이 발생한 환자가 병원과 의사에게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약 3억4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부산지방법원은 원고 측 소송대리인인 법무법인 정향(담당변호사 차성원, 유진영)이 주장한 ① 시술 전 설명의무 위반, ② 시술 과정에서의 과실, ③ 시술 후 경과 관찰 소홀 등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여 원고 측이 주장하였던 청구취지 3억5천만 원 중 3억4천만 원을 인정해 준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계에 따르면 병원과 의료진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환자 A씨는 2016년 6월경 허리와 다리통증으로 한 대학병원에 내원해 마취통증의학과 의사 B씨로부터 진료를 받아 6월 28일 요추부 내시경 레이저 감압술 치료를 진행했다.
A씨는 시술 다음 날인 6월 29일부터 골반 주위 감각이 둔해지고, 배변¤배뇨 감각이 저하된다고 호소했고, 이에 주치의인 B씨는 약물 투여 등의 조치를 취했다.
약물 투여 조치에도 A씨의 증상에 차도가 없자 B씨는 타과와 협진을 통해 A씨의 증상이 ‘마미증후군’이라고 진단했는데, 이 때가 7월 12일었다.
결국 A씨는 배변 및 배뇨기능 장애가 여전한 채로 2018년 1월 30일 병원에서 퇴원했는데, 현재 A씨는 현재 천추부 신경근병증과 이로 인한 양측 하지 근력저하, 배변 및 배뇨기능 장애 소견을 받은 상태다.
환자 A씨 측 소송대리인은 소를 제기하며 세 가지 주장을 펼쳤다.
먼저 대학병원이 시술 전 발생할 합병증 등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설명의무를 위반했고, 의사 B씨가 내시경 레이저 감압시술을 하면서 주의의무를 위반해 본인의 신경을 손상시켰으며, 나아가 시술 이후 A씨가 후유증을 호소하는데도 B씨가 그에 대한 진단과 치료 없이 이를 방치해 현재의 상태에 이르렀다며 의료행위상 과실에 대한 손해를 배상하라고 주장한 것이다.
재판부는 피고측이 설명의무를 다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 결정적 이유 중 하나는 환자 A씨의 수술 마취 동의서에 본인이 아닌 A씨의 배우자가 자필을 기재하고 서명을 했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이유로는 대학병원이 해당 수술 마취 동의서에 수술 합병증으로 ‘신경손상(일시적)’을 기재하기는 했으나 해당 시술 후 영구적인 신경손상이 발생할 수 있음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고, A씨가 시술 합병증으로 걸린 ‘마미증후군’에 대한 설명도 하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됐다.
특히 대학병원 측은 해당 시술의 합병증으로 마미증후군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이 2017년 10월경에야 증례보고를 통해 밝혀졌다고 주장했으나 법원 감정촉탁의에 따르면 내시경 수술로 인한 마미증후군 발생가능성은 항상 존재하며, 증례보고가 있기 전에도 마미증후군은 예측이 가능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재판부는 “피고들이 주장하는 사정과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설명의무를 다했다고 보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피고들이 설명의무를 다하지 않은 과실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 시술 직후 배뇨·배변 장애 원인, 의사 과실로 특정…경과 관찰 소홀로 손상 악화 지적
재판부는 대학병원과 B씨가 시술과정에서 신경을 손상시킨 과실과 경과 진찰상 과실도 있다고 봤다.
환자 A씨는 시술을 받기 전까지 배변 및 배뇨기능 장애와 같은 증상을 보이거나 이러한 진단 또는 치료를 받은 내역이 없었다. 하지만 시술 다음 날부터 배변, 배뇨와 관련해 감각 저하가 일어났고, 퇴원할 때까지도 배뇨장애와 배변장애 증상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A씨에게 발생한 마미증후군은 허리 척추뼈 아래 부위에 있는 다발 신경근이 압박을 받거나 손상을 입었을 때 발생하는데, B씨가 시술을 시행한 제4-5본 요추 부위가 바로 마미가 위치한 지점이었다.
진료기록감정촉탁 결과도 시술 직후 배뇨장애 및 배변장애, 하지마비 증상이 발생했으므로 시술이 마미증후군의 원인이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왔다.
이에 재판부는 “이 사건 시술 직후 배뇨장애¤배변장애 등 마미증후군 증상이 발생한 것으로 보이고, B씨가 시술을 하면서 카테터의 접촉 또는 레이저의 열로 인해 신경 손상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이에 그치지 않고 A씨가 시술 다음날부터 배뇨장애와 배변장애를 호소했음에도 시술 8일이 지난 2016년 7월 6일에서야 비뇨기과 협진을 의뢰했고, 7월 8일경에야 재활의학과 협진을 의뢰한 것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경과 관찰 상의 뒤늦은 조치가 A씨의 신경 손상을 악화시키고 고착화시키는 데 원인이 됐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재판부는 원고가 주장한 설명의무 위반, 주의의무 위반과 시술 후 경과 관찰 상 진단과 치료 지연 등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였다.
원고 소송대리를 수행한 법무법인 정향의 차성원 변호사는 “기존 마미증후군 관련 사건들에서 인정된 금액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손해배상금이 인정됐다”며 “의료진의 과실로 예기치 않게 마미증후군 등의 증상을 겪고 있는 수 많은 피해자들을 감안할 때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부산(스포츠동아) l 김태현 기자 localbuk@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