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P가 되지 못한 ‘브이아이피’

입력 2017-09-06 06:57: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영화 ‘브이아이피’ 사진제공|영화사월광

화려한 캐스팅·‘신세계’ 감독 이름값 불구
여성 인권 유린 논란…관객 135만에 그쳐


영화 ‘브이아이피’가 제목처럼 관객의 높은 관심을 받는 ‘VIP’가 되지 못하고 있다. 화려한 캐스팅과 흥행작을 낸 감독의 새로운 도전이었지만 지나치게 잔혹한 범죄 묘사와 더불어 여성 인권을 유린했다는 지적을 끝내 이겨내지 못한 탓이다.

‘브이아이피’(제작 영화사월광)는 장동건과 김명민, 박희순, 이종석이 주연으로 나선 범죄영화다. 국정원과 미국 CIA 주도로 이뤄진 북한 고위인사의 ‘기획 귀순’을 소재로, 최근 늘어나고 있는 남북한 배경 영화와 차별화를 노렸다. 더할 나위 없이 이름값 높은 스타들의 참여,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로 시선을 끌었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다.

제작비 회수도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브이아이피’ 손익분기점은 약 270만 명으로 알려졌지만, 5일 현재 135만 명(영화진흥위원회)에 머물고 있다. 예매율은 10위권 밖으로 밀려나 사실상 반등 기회를 찾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브이아이피’를 향한 관객의 기대치가 상영을 거듭할수록 낮아진 데는 극 중 여성 캐릭터를 지나치게 잔혹한 범죄의 대상으로 그린 것에 대한 반감이 결정적이다. 대형 포털사이트는 물론 몇몇 영화사이트에서도 이와 관련한 비판 목소리가 상당하다.

특히 이종석이 연기한 북한 고위인사의 아들이자 연쇄살인마인 주인공이 여성을 상대로 벌이는 진안한 범죄를 굳이 그렇게 세밀하게 스크린에 담아낼 필요가 있느냐는 반론도 자주 눈에 띤다. 극장의 핵심 관객층인 20∼30대 여성의 외면을 받은 사실도 ‘브이아이피’가 저조한 성적이 그친 또 다른 원인으로 지목된다.

‘브이아이피’는 범죄, 액션, 스릴러 장르에 치중된 한국영화 제작 분위기와 그 안에서 어쩔 수 없이 남자 캐릭터 중심으로 이야기가 짜여지는 편향적 시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있기도 하다. 영화계 한 중견 제작자는 “장르의 개성을 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객이 반감을 느낄 정도라면 돌아볼 필요가 있다”며 “과거보다 영화에 대한 다양한 분석과 평가, 의견형성이 가능한 환경이 됐다는 사실도 고려해야하는 현실”이라고 밝혔다.

연출을 맡은 박훈정 감독으로서도 아쉬움이 상당하다. 2013년 영화 ‘신세계’로 성공을 거두고 2015년 ‘대호’로 새로운 실험을 마친 끝에 직접 영화사를 설립해 ‘브이아이피’를 창립 작품으로 내놨지만 첫 도전에서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고 있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