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애도 무너질 수 있다.”
미셸 위(20·나이키골프)와 신지애(21·미래에셋)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정식 데뷔전에서 극과 극의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돌풍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했던 신지애는 2라운드에서 81타라는 최악의 성적으로 컷 탈락의 수모를 당한 반면, 미셸 위는 준우승을 차지하며 데뷔전을 성공적으로 치렀다.
30개 대회 중 이제 첫 단추를 꿴 것에 불과해 이번 대회 성적만으로 시즌을 전망하기엔 다소 무리가 따른다. 바둑으로 치면 이제 겨우 포석이 끝난 단계다. 포석은 어떤 전략으로 상대를 꺾을지 판세를 확보하는 중요한 단계지만 사활이 걸려 있는 문제는 아니다.
신지애의 데뷔전 컷 탈락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가 있다.
첫째, 자만은 금물이다. 지난해 세 차례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화려한 신고식을 치렀지만 세계 최고의 실력자들이 모인 LPGA는 결코 만만한 무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순간이라도 방심했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둘째, 철저한 자기관리가 필요하다. 신지애는 개막전 대비에 소홀했다. 이전에도 같은 코스에서 열린 대회에 두 차례 참가한 적이 있지만 이번은 상황이 다르다. 풀 시즌을 뛰어야 하는 시작이라는 점에서 예전과 같은 방식의 대회 참가는 자칫 1년 농사를 망칠 수도 있다.
게다가 신지애는 개막전을 앞두고 호주 ANZ 레이디스 마스터스에 출전한 후 대회가 열리는 하와이에 사흘 전 도착했다. 현지 분위기와 코스 적응에 필요한 시간이 부족했다. 비행거리가 많았던 만큼 컨디션 조절도 실패했다.
딸과 함께 수년 째 미 LPGA 무대를 돌고 있는 골프 대디 K 씨는 개막을 앞두고 “신지애가 성공하기 위해선 시차와 현지 분위기 적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결국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출전할 대회의 스케줄에 따른 철저한 컨디션 조절과 체력 안배가 LPGA 성공의 열쇠라는 얘기다.
셋째, 신인으로서의 자세다.
“그동안의 일은 모두 잊겠다. 내년부터는 다시 신인이라는 마음으로 대회를 준비하겠다.” 지난 연말 신지애가 LPGA 정식 데뷔를 앞두고 밝힌 각오였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보여준 신지애의 모습은 신인답지 않았다. 대회 2라운드가 끝나고 “바람에 대비하지 못한 게 실수였다”라고 컷 탈락의 요인을 분석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이번 대회에 출전한 선수 중 어느 누구도 하와이의 바람에 대비하지 않은 선수는 없다. 좀더 많은 정보 수집이 필요하다.
이번 대회를 통해 팬들도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신지애도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이다. “쓴 보약을 먹었다고 여기겠다. 사실 준비도 부족했다. 언제가 맞을 매라면 빨리 맞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신지애는 이번 대회의 실패 원인을 잘 알고 있다. 새로운 시즌을 시작한다는 개념 없이 작년 시즌의 연속인 것처럼 일정이 짜여졌다는 점을 인정했다. 첫 단추는 어긋났지만 신지애는 여전히 LPGA 돌풍의 중심에 서 있다. 신지애가 어떤 모습으로 변신해 다음 무대에 오를지 관심이 더 커졌다.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